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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박재규 전 통일부 장관(경남대 총장) 회고록 ‘일념, 평화통일 길’ 발간

'평화통일’이라는 일념 하에 숨 가쁘게 달려온 45년간의 기록


1970년대 초반, 엄혹했던 냉전질서가 해빙을 시작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한반도는 예외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박재규 총장은 1972년 9월 1일 ‘경남대 통한문제연구소’(현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를 설립했다. 이후 연구자로서 각종 학술회의를 통해 금단의 영역으로 간주됐던 북한·통일문제를 비롯해 동아시아와 한반도, 동남아, 핵확산, 해양 문제 등을 과감하게 다뤄왔다. 이는 학술적인 측면에서 선도적인 개척이었다. 1980년대 중·후반 수교도 이뤄지지 않았던 중국과 소련을 전격적으로 방문해 ‘공산권 체험 교육’ 사업을 추진한 것에서 그의 활동가로서 집념의 기질을 엿볼 수 있다.


1998년에는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종합대학, 김책공업종합대학과의 직접적인 학술 교류를 시작했다. 제26대 통일부 장관으로 입각한 뒤에는 역사적인 첫 남북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고, 제1~4차 남북장관급회담 우리측 수석대표로서 남북관계를 전환시키는 데 기여했다. 장관에서 물러난 뒤에도 대학 총장으로서 세계 각국의 주요 인사들에게 한반도 평화정착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한반도 주요 이슈에 대한 학술회의를 비롯해 강연, 면담 등을 통해 평화통일의 길을 계속 걷고 있다. 최근 경남대학교 출판부가 발간한 ‘일념, 평화통일 길’은 195쪽 분량에 총 390장의 사진을 통해 박재규 총장이 걸어온 45년의 주요 장면들을 담아내고 있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숙명인 평화통일의 전도사
박재규 총장은 책머리에서 “한민족의 염원이었던 광복을 맞이하기 1년여 전 일본에서 태어난 나에게 분단 극복과 평화통일은 어쩌면 하늘이 준 숙명이었는지도 모른다.”고 소회를 밝혔다. 미국 유학 시절 만난 Peter Wiles 교수와 John Herz 교수의 충고는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귀국해서는 북한·통일문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일에 매달렸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를 설립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아 미국 정치의 중심지인 워싱턴에서 첫 국제학술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이후 국내에서 지속적으로 한반도 평화와 통일문제를 비롯한 소련·중국 등 공산권을 주제로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함으로써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의 역량을 확인하고 강화해나갔다.


1986년 베이징을 방문해 중국 정부와 한국 대학생 및 교수들의 ‘공산권 체험 교육’ 프로그램 실시에 합의했다. 이를 토대로 1989년에는 모스크바를 방문해 소련 체험 교육에 합의했으며, 동구권 국가들로 교육의 장을 넓혀갔다. 한편 경남대 행정대학원에 북한학과를 개설하고, 이를 경남대 북한대학원으로 발전시켰으며, 이를 다시 ‘북한대학원대학교’로 승격·독립시키는 등 통일미래 대비를 위한 인재양성에도 매진했다. 이러한 내용이 ‘일념, 평화통일 길’ 제Ⅰ부에 담겨있다.




제Ⅱ부 ‘남북 화해·협력의 선봉에 나서다’에는 제26대 통일부 장관으로 입각하는 순간부터 장관에서 물러나던 순간까지가 수록돼 있다. 역사적인 최초의 남북정상회담 합의 발표 및 준비 과정,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남북정상회담 추진위원장으로서 방북해 김정일 위원장 등과 회담했던 일, 남북장관급회담 우리측 수석대표로서 제1차 회담부터 제4차 회담까지를 이끌었던 일 등을 사진과 함께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특히, 제1~4차 남북장관급회담을 통해 남북정상회담 합의사항을 이행하며 한반도 평화와 남북한 교류·협력의 기틀을 닦았고, 남북회담의 전형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모습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제Ⅲ부 ‘남북 교류 및 민간 외교 활동에 전념하다’에는 통일부 장관에서 물러난 뒤에도 지속적인 방북과 북한 인사들의 한국 방문 등을 통해 민간 차원에서 남북관계 발전에 기여했던 내용이 실려 있다. 이 가운데 한국이 배출한 세계적인 음악가로 손꼽히지만 정작 조국이 외면했던 윤이상 선생 문제 해결을 위해 박 총장이 기울였을 노력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 특별하게 느껴진다.




제Ⅳ부 ‘평화통일 기반 조성 위한 민간외교 지속하다’는 해외 정상급 인사들을 비롯해 각국 외교 사절과 잭 앤더슨 미국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등과 만나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대한 논의를 지속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그가 만난 대표적 인사들은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중국 주룽지 총리, 나카소네 야스히로 일본 총리, 모리 요시로 일본 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 간 나오토 일본 총리, 천수이벤 대만 총통, 마잉주 대만 총통, 차이잉원 대만 총통, 탁신 태국 수상, 훈센 캄보디아 총리 등이다. 이처럼 박재규 총장은 민간 차원에서 통일외교의 지평을 넓혀가는 길에서 지속적으로 헌신하고 있다.






박재규 총장의 평화통일 일념


대담 서연 대기자


박재규 경남대 총장(전 통일부 장관)과 인연을 맺어오면서 간혹 만날 때마다 남북관계와 평화통일에 대한 걱정과 염려 섞인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최근 ‘일념, 평화통일 길’ 발간을 계기로, 지난 45년간 ‘평화통일’이라는 한 가지 생각을 하고 한 길을 걸어온 박 총장이 우리 사회 원로로서 가진 평화통일 구상이 무엇인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박재규 총장은 Peter Wiles 교수, John Herz 교수와의 인연을 소개하는 것으로 말문을 열었다. ‘일념, 평화통일 길’에서 밝힌 것처럼, 평화통일과 북한문제는 그에게 숙명이었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를 설립한 뒤 평화통일이라는 민족적 숙원을 이루는 데 기여하고자 나름의 노력이 본격화됐다. 북한·통일문제 전문 연구기관을 설립하는 것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우려도 있었지만, 박 총장은 숙명이라 생각하고 그 길에 매진했다.




제26대 통일부 장관으로서 역사적인 첫 남북정상회담과 제1~4차 남북장관급회담을 이끌며 남북관계 전환에 앞장섰던 그에게서 현재의 남북관계에 대한 안타까움과 우려가 매우 컸다. “평화통일의 기반인 3대경협사업을 너무 쉽게 끊었다.” 3대경협사업은 금강산관광, 개성공단, 철도·도로 연결을 지칭한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합의사항을 이행하기 위한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북한 대표단과 씨름하며 3대경협사업의 토대를 만들었던 그였기에 안타까움은 더욱 크게 느껴졌다.


3대경협사업 추진에서 가장 큰 장애물은 북한 군부의 완강한 반대였다고 한다. 이 때문에 평양에서 열린 제2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식사도 거르고 북한의 헌법상 국가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면담 일정까지도 미뤄가면서 나름의 투쟁을 벌이며 김정일 위원장 면담을 강력하게 요청했다. 이러한 박 총장의 ‘왕고집’ 때문에 밤을 새워 기차를 타고 김용순 대남비서와 토론하면서 자강도까지 가서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 남북군사회담 개최를 약속받았다. 제3차 남북장관급회담 직전 제주에서 열린 제1차 남북국방장관회담을 통해 3대경협사업을 포함한 남북한 간 교류·협력 사업에 필수적인 군사적 보장 조치를 확보할 수 있었다.


남북장관급회담을 통해 기반이 마련됐음에도 3대경협사업이 실제로 추진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남북관계의 부침에 따라 철도·도로가 연결되는 데에만 무려 7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이 기간 많은 인내와 비용이 소용됐음에도 남북한 교류·협력을 통한 한반도 평화정착 실현이라는 강력한 의지가 지속됐기 때문에 결국 결실을 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지나는 동안 북한의 잇따른 강경 도발과 핵·미사일 개발 지속, 대북 강경정책 추진 등이 지속되면서 현재는 3대경협사업을 포함한 남북한 간 교류·협력이 모두 단절된 상황이다.




박 총장은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현재 남북관계를 매우 아쉬워했다. 서해 평화벨트였던 개성공단, 동해 평화벨트였던 금강산관광, 한반도의 평화벨트를 이어주던 철도·도로가 끊어진 상황은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고조를 제어할 수 있는 장치가 모두 사라졌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있어서는 안 될 일이지만, 남북관계가 단절된 현재 국면에서 핵문제 해결의 전기를 마련하지 못해 강대강의 군사적 충돌이 벌어지는 상황이 절대로 발생해서는 안 된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조속히 도발 → 제재 → 더 큰 도발 → 더 강화된 제재의 악순환에서 벗어나 대화·협상을 통해 해결의 접점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만약 남북한 상생의 공간이자 통일의 실험장이었던 개성공단의 성과를 토대로 휴전선 인근에 남북한뿐 아니라 외국 기업이 중심이 되는 제2의 개성공단을 만드는 데까지 남북관계가 진전됐다면 한반도에서 전쟁이 다시 발발하는 상황을 우려하지는 않아도 됐을 것이라고 박 총장은 강조했다. 이어서 모든 것이 단절된 남북관계를 복원·정상화하기 위해서는 2000년 남북관계 전환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보다 더 큰 노력과 비용, 인내가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런데도, 박재규 총장은 지난 45년간 걸었던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정착, 통일 실현이라는 전인미답의 길을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뚜벅뚜벅 걸어갈 것이라고 강한 의지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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