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그룹의 모기업이었던 동양시멘트는 1938년 일본 오노다 시멘트회사의 삼척공장으로 출발했다. 1945년 해방 직후 생산이 중단되었는데 1953년 7월부터 운크라(UNKRA)원조계획으로 보수공사를 했다. 1956년 동양그룹의 창업자인 이양구 회장이 삼척시멘트를 인수하여, 1957년 동양세멘트공업㈜으로 상호를 바꾸면서 연간 8만 톤의 시멘트를 생산하는 시멘트 제조 회사로 새롭게 출범했다, 1980년대 건설업계의 호황으로 전성기를 맞이했으나 현재는 기업회생절차를 거쳐서 레미콘과 골재, 철도건설 등 건설 기초소재 위주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삼표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되었다.
미군정하의 미곡정책이 실패하며 농가경제가 피폐되자 미군정은 미곡 등 소비재 중심의 원조로 이를 해결하고자 했다.
납북 미수로 고성에 불시착한 속초발 KAL기. 승객과 승무원 65명이 탑승한 여객기로 괴한에 의해 납북 도중 고성 초도리 해변에 불시착했다.
6.25전쟁이 한창일 때 전국에서는 각종 단체들의 총궐기대회가 잇따랐다. 사진은 51년 1월에 열린 문교단체 정신무장 총궐기대회의 모습이다.
총검술은 총에 검을 착용해 적을 공격하는 백병전 기술의 하나이다. 오늘날 총검술은 무기가 고도로 발달한 현대전에의 유용성문제로 폐지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9월, 육군은 신병 교육훈련에서 총검술을 단일과목에서 폐지하고 각개전투에서 일부 동작만 배우게 된다고 밝혔다. 이미 육군은 2011년부터 총검술 교육 여부를 사단장 판단에 따라 결정해왔다. 또 해군은 2007년, 공군은 2019년부터 총검술 교육을 하지 않고 있다. 폐지 의견은 개인이 분당 수 백발을 쏘아대는 현대전투에서 총검술은 불필요한 훈련으로 쓸모 있는 상황이 없다는 주장이다.
고궁 스케이트장이 왠지 낯설면서도 정겹다. 실제로 1910년대부터 경복궁 경회루, 창덕궁 후원, 한강 등지에서 겨울철이면 스케이트를 탔다. 경회루는 우리나라에서 단일 면적으로 가장 큰 규모의 누각으로 연못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한편으로 고궁 스케이트장은 일제의 창경원 설치 등에서 각인된 잔재를 느끼게 한다. 스케이트는 산골 벽지 논에서도 탈 정도로 한때 국민 스포츠로 각광받았다. 오늘날에는 근교 야외 스케이트장이 있으나 따스한 기온으로 제 역할을 못하고, 전기로 얼리는 실내 스케이트장이나 겨울철마다 여는 서울시청 광장 스케이트장이 대표적이다.
각 도공보관을 통해 각급학교에 배부될 대통령 존영 수여식. 공보실은 자라는 학생들로 하여금 대통령의 위훈을 추앙케 하기 위함이라며 전국교육기관에 배부했다.
1964년 11월 30일 우리나라 수출실적이 최초로 1억 달러를 돌파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한 ‘제1회 수출의 날 기념식’이 12월 5일 서울시민회관에서 열렸다.
1970년의 부산항 전경. 부산항은 우리나라 최초·최대의 무역항이다. 항구 전면에 영도와 조도가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어 항만으로서 천혜의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 1876년(고종 13)에 부산포란 이름으로 개항됐으며, 1898년 매립공사로부터 1906년 부두 축조공사를 함으로써 항구의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됐다. 1970년 이후에는 부산항 제1·2·3·4단계 개발과 북항 재개발사업을 통해 국제무역항으로서의 면모를 갖췄다.
1972년 연말, 지금의 서울 세종문화회관 자리에 있었던 서울시민회관에 화재가 발상해 사망 51명, 부상 76명의 큰 피해가 났다. 이날 서울시민회관에서는 문화방송 개국 11주년기념 10대 가수 청백전 공연이 열렸다. 불은 공연이 끝나 관객이 밖으로 나오는 순간 무대 위 조명장치가 전기과열로 터지면서 시작됐다. 당시 무대에 섰던 가수로는 남진·이상렬·이용복·정훈희·조미미·하춘화 등이 있으며, 신인상 수상자 김세환과 정미조, 특별상 수상자 김추자, 코미디언 구봉서와 곽규석 등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