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우호와 전진을 다짐하며 72년 8월 26일 독일의 뮌헨에서 막을 올린 제 20회 올림픽대회는 122개국 1만 여명의 출전선수단, 초현대적인 설비, 쏟아져 나온 세계 신기록등 모든 면에서 사상최대를 자랑했으나 팔레스타인 게릴라 테러라는 또 하나의 사상 최악의 역사를 남긴 채 열전 17일의 막을 내렸다. 팔레스타인 ‘검은 9월단’ 테러로 11명의 이스라엘 선수들이 모두 사망하는 최악의 사태로 인해 1972년 뮌헨 올림픽은 '평화의 제전'이 아닌 '피의 제전'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8개 종목에 62명의 선수단이 참가한 한국은 유도의 오승립이 차지한 은메달 하나가 유일한 메달이었다.
서울 중구 남대문로 2가 KAL빌딩 1층 현관에서 한진상사의 전파월 기술자 250여명이 ‘체불노임 149억원을 지불하라’고 외치며 난입, 현관집기 및 유리창등을 몽둥이로 마구 부수고 불을 지르는등 난동을 부렸다. 이들은 출동한 경찰과 4시간 30분 동안 맞서다 대부분이 경찰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고 그 중 주동자 56명이 구속됐다. 사건의 원인은 파월시의 계약조건이 분명치 않아 계약내용의 주장을 달리 해석한데 있었다. 이후 KAL빌딩 농성자 중 13명에겐 징역 1~5년이 선고됐다. 한진 쪽이 미불임금으로 어떤 제재를 받았는지 알려지지 않았다.
북악터널은 서울시 종로구 평창동에서 성북구 정릉동까지 북악산을 관통하는 길이 810m의 터널이다. 쌍굴로 4차선이며 서대문구 홍은동, 종로구 부암동·평창동 지역에서 성북구 정릉동, 도봉구, 동대문구 방향에 이르는 도로로써 동서 지역간의 교통소통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한가위때면 화려하게 씨름대회가 열렸으나 안타깝게도 지금은 사라져가고 있다. 80년대 전성기를 맞이한 씨름 경기에 있어 가장 큰 전환점이 된 시기는 1972년이다. 그해 9월 24일부터26일까지 장충체육관에서는 대한 씨름협회와 KBS가 공동주최하고 문화공보부가 후원한 제1회 KBS배 쟁탈 전국장사 씨름대회가 열렸다. 이전까지 야외모래판에서 실시하던 것을 실내의 매트에서 하게 되었고 경기가 열리는 3일동안 KBS-TV에서 중계방송을 전국으로 실시하여 전국민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이 경기를 보게 되었던 것이다. 이 대회는 체급에 관계없이 출전하여 토너먼트 예선전을 거쳐 8명이 리그전 형식으로 최종결승을 치뤘다. 씨름단이 잇달아 해체되고 유망선수들이 방송이나 종합격투기등으로 진출하며 침체기를 맞은 지금의 씨름계의 모습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70년대까지 자격증의 대명사였던 주산 부기 타자… 자격증을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재발급을 해주고 있는데 당시 상고생들에게 추억거리가 될 것이다.
경기도 양주는 경기도 중북부에 위치해 있으며 조선건국 1392년 태동하여 양주도호부·양주군이었던 지역으로 625년의 역사를 가졌다. 수도권의 도시화로 행정구역의 잦은 변화를 겪어왔다. 1963년 의정부읍이 시로 승격되어 분리되었고, 1980년에는 2개읍 6개면 일대를 남양주군으로 신설하여 분리했다. 1981년에는 동두천읍도 시로 승격·분리되었다. 2003년 양주시로 승격되었다. 1951년 초가집만 보이던 경기도 양주는 2020년 현재 인구 23만, 재정규모 9,561억의 도시가 되었다.
7·4 남북 공동 성명은 남한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북한의 김영주 조선 노동당 조직지도부장이 서울과 평양에서 자주·평화·민족 대단결이라는 통일의 3대 원칙을 동시에 발표했던 성명이다. 중상비방 및 무장도발 금지, 남북적십자회담 실시를 위한 적극협조, 서울과 평양 간 상설 직통전화 설치 등의 합의사항도 포함되었다. 공동 성명의 발표 배경은 국제적인 화해 분위기와 국내의 정권 안정 및 명분 추구의 필요성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성명은 통일 문제에 대한 국민적 합의 없이 정부 당국자들 간의 밀담을 통해 처리되었다는 한계성과 통일 논의를 자신의 권력 기반 강화에 이용하려는 남북한 권력자들의 정치적 의도로 빛을 잃었다.
경부고속도로는 고속국도 제1호선이다.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기간인 1968년 2월 1일에 착공하여, 1970년 7월 7일에 완공되었으며, 1971년 8월 31일에 노선이름이 서울·부산 간 고속도로로 지정되었다. 경부고속도로가 개통할 당시의 기점은 서울특별시 강남구 압구정동이고 종점은 부산광역시 금정구 구서동이었으나, 2002년 5월 1일에 변경된 노선체계에 따라 기점은 부산광역시 금정구 구서동(구서 인터체인지)이고 종점은 서울특별시 서초구 양재동으로 변경되었다. 수도권과 영남지방을 이으며, 인천과 부산의 2대 수출입항을 연결하는 산업대동맥 구실도 하고 있다. 또한, 서울·수원·오산·천안·대전·영동·황간·김천·구미·왜관·대구·영천·경주·언양·양산·부산 등 주요 지역을 경유하여 전국을 일일생활권으로 연결하고 있다.
경인고속도로는 고속국도 제120호선이다. 1967년 3월 24일 착공하여 1968년 12월 21일에 완공된 우리나라 최초의 고속도로이다. 실제 건설은 29.5㎞로 건설되었으나 1985년에 현재의 제물포길에 해당하는 서울특별시 양평·신월 구간 5.6㎞는 서울시로 이관되어 현재의 총연장은 23.9㎞이며, 기점은 인천광역시 남구 용현동이고 종점은 서울특별시 양천구 신월동이다.